온실 속의 아이 들(월호도를 다녀와서)

관리자
발행일 2013-11-18 조회수 6

                      온실 속의 아이 들
  
오랜만에 아이들과 나들이를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부는 하늬바람이 나를 망설이게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한 약속을 어기면 당한다. 거짓말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는 횟수가 많다. 깐깐한 성격의 내 딸은 물론, 나무도 이제는 나를 공격한다.
  예상대로 가는 뱃길은 순조롭지 않다. 바닷물 공포가 있는 나무는 두려워하면서도 재미가 있나보다. 오랜만에 확 트인 시야 때문인지 사나운 바다를 보면서도 아이들은 즐겁다. 월호도에 상륙하자, 이유 없이 즐거운가보다 아마 잠재된 천진성이 자연을 본능적으로 즐기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즐거우니 나 또한 즐겁다.
  내가 유소년 시절 고구마를 중식으로 먹어야 했던 고약한 기억을 뒤로하고, 아이들의 건강식으로 수확하면서 흙을 만지니 가난했던 과거가 뇌리를 스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굴레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연무처럼 지나간다.
  섬에서 여러 회원들과 먹는 점심은 맛이 너무 좋다. 누가 준비했는지도 모르고 젓갈에 먹는 쌈은 언제라도 서민적인 모습이 감춰지지 않는다. 주꾸미와 문어를 준비하느라 동분서주 했을 근호아저씨의 분주함이 눈에 선하다.
  과거에도 가본 적이 있는 유자 숲, 그 때보다 훨씬 커진 나무가 반가웠다. 사람은 크는 한계가 있기에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유자나무에 자연적으로 의지하게 된 잡목들 때문에 목적물을 수확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수확한 유자를 짊어지고 오는 길은 과거를 많이 더듬게 한다. 소년시절 화목을 구하기 위해 산꼭대기를 밥 먹듯이 다녔다. 도시국가에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기계문명에 젖어있는 지금의 나를 많이 반성하게 한다. 아이들을 체험시켜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음에도 산세가 험하다는 생각으로 어른들만 온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아이들이 잣밤이라도 줍는다는 소식에 위안이 된다.
  돌아오는 길, 가던 길보다 바다가 더 사납다. 사무국장은 아이들을 태우는 게 걱정인지 나 혼자 가라고 한다. 그럴까 망설이다가 성난 바다를 아이들과 함께 왔다. 나는 평소에 아이들은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체험하는 경험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겁나고 걱정이 앞서는 이유로 아이들을 유리온실 속에 가두어두는 나를 질책한 적이 많고 어떤 힘든 일을 시키기가 겁이 난다. 나만의 생각일까? 아직 어리다고 나 자신의 걱정 속에 아이들을 묶어 놓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배를 타면서 경험한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들이 내 자식들이 겪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먼 훗날 내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지도 모르면서!
  오늘 함께한 회원 여러분에게 가는 길이 걱정이 되어 인사하는 여유를 부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한 시간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모두의 건강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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