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교수의 고목나무 속 전설 - 밤나무, 그리고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

관리자
발행일 2011-07-02 조회수 30


































밤나무, 그리고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



 




 






밤나무꽃



 



밤나무골, 밤나무고개, 율동(栗洞), 율목동(栗木洞), 율전동(栗田洞) 등 밤나무가 들어간 지명이 흔하다. 밤나무는 열매와 목재 모두 쓰임이 많아 우리와 가까이 지낸 나무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친숙하였던 탓이다. 6월에 회백색 꽃으로 만났다가 가을날의 알밤을 거쳐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거리의 군밤까지 밤은 여러 번의 변신을 한다. 밤꽃은 초록색 잎에 연한 잿빛 가발을 쓴 것처럼 온통 나무를 뒤덮고 핀다. 밤꽃이 한창 피어 있을 때 코끝을 스치는 꽃 냄새는 향기로움으로 가득 찬 다른 꽃들과는 달리 살짝 쉬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시큼한 묘한 냄새가 난다. 바로 남자의 정액 냄새란다. 옛 부녀자들은 양향(陽香)이라는 이 냄새를 부끄러워하여 밤꽃이 필 때면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더더욱 근신했다 한다.
가을이 짙어가면서 열리는 밤은 조상들이 관혼상제의 예를 갖출 때 감, 대추와 함께 상에 올린 3대 과일 중의 하나이었다. 가시 돋은 껍질 안에 밤알이 세 개씩 들어 있어서 출세의 대명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함께 있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밤이 싹틀 때 밤 껍질을 땅 속에 남겨두고 싹만 올라오는데, 그 껍질이 오랫동안 썩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근본인 조상을 잊지 않는 나무라고 여겨 제사상에 올렸다는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 밤은 이런 사연을 갖고 있으면서 밤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으므로 사당의 위패(位牌), 제상(祭床) 등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 용품에 빠지지 않았다.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498호 밤나무





 



밤나무는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항상 있어 왔지만 전설을 간직한 고목나무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밤나무의 쓰임이 많아 크게 자라면 흔히 배어 써버렸으며, 밤나무혹벌이라는 눈곱 크기 남짓한 벌레의 피해를 받아 재래종 밤나무 고목은 거의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천연기념물로 498호로 지정된 강원도 평창 운교리 밤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굵기는 뿌리목 둘레가 640cm나 되고 나이는 거의 6백년에 이른다. 나무 높이는 14m이며 굵은 가지 여러 개가 얼기설기 뻗어 있다. 흔히 만나는 제배 밤나무와는 달리 엄청난 굵기에 놀란다. 고목으로서의 의젓한 품위와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이 돋보인다.



 



 






영월 법흥사 보호수 밤나무




이 밤나무 주위는 서울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강릉에 이르는 관동대로의 길목에 있던 운교역 의 마방(馬房)터로 알려져 있다. 밤나무가 이렇게 마방의 한편에서 수백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두루두루 쓰임새가 넓은 탓이다. 밤은 탄수화물·단백질·기타지방·칼슘·비타민(A·B·C) 등이 풍부하여 오늘날에도 거의 완벽한 식품의 하나이다. 먹을거리 부족에 시달리던 옛 사람들에게 이런 영양 만점의 밤은 귀중한 식량자원이었다. 옛 무덤에서 심심찮게 밤알이 출토되며, 밤나무를 심고 가꾸라는 관청의 독촉장을 옛 문헌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운교리 이외에 고성 교동리와 인흥리, 영월 법흥사, 예천 신풍리등에도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밤나무가 자란다.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밤나무 이야기에는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도 빠지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밤이 단순한 간식거리가 아니라 귀중한 식량 자원으로서, 모양이 비슷한 나무는 흔히 밤나무로 만들어 항상 배부르게 먹기를 소원한 탓에 ‘너도’ ‘나도’ 밤나무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같이 참나무 무리에 들어가고 작은 도토리가 달리니 그런 대로 밤나무와는 먼 친척뻘이 되는 셈이나, 남부지방에만 자라는 나도밤나무는 언뜻 보면 잎이 밤나무보다 좀 크고 모양새가 닮았다는 것 외는 전혀 엉뚱한 나무다.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깊은 산골에 가난한 부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정해진 날까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한테 물려 가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 날부터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위에 자라는 밤나무는 모조리 캐다가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999그루를 심고 마지막 한 그루는 아무래도 채울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산신령이 말씀하신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어떻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 조금은 엉뚱하게도 율곡 선생이 밤나무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밤나무골이라는 그의 호 율곡(栗谷) 덕분에 밤나무와 관련된 여러 전설마다 단골손님이다. 선생이 가까이 있는 한 나무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네가 밤나무를 대신하라’고 이르시자, 이 나무는 냉큼 ‘나도! 밤나무요!’ 하고 나선다. 호랑이 눈에는 ‘그게 그것일’ 가짜 밤나무 한 그루를 마지막으로 채워 1천 주의 밤나무 심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때까지 제대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던 이 나무를 사람들은 ‘나도밤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나도밤나무 전설은 엉뚱하게도 울릉도 너도밤나무로 둔갑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울릉도에 사람이 본격적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것은 1883년경이니 율곡은 울릉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분이다. 육지에는 전혀 볼 수 없고 울릉도에만 자라는 너도밤나무에 율곡 이야기를 꿰맞추는 것은 전설의 의미를 훼손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우리숲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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