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그림자 (최병수작가)

관리자
발행일 2009-01-30 조회수 9



별빛그림자
                             - 최병수 작가
    이십대 중반 무렵, 지리산 종주를 하자는 아는 형의 제의에 따라 지리산 겨울산행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예정은 사박오일로 잡았었는데, 갑자기 폭설이 내려 날짜를 채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도중에 하산을 결정했다.
    산에는 해가 일찍 진다. 그래서 특히 겨울산행은 적어도 오후 네 시 전에는 숙소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허벅지까지 쌓인 많은 눈으로 인해 숙소는커녕 산을 미처 다 내려오지도 못하고 벌써 어둠이 내렸다.
    처음엔 산행을 제의했던 형이 인솔자였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을 만나 책임감과 당황함으로 그 형은 진작 지쳐버렸다. 그래서 대신 내가 앞장을 서서 하산 길을 찾아 헤맸다.
달이라도 있으면 거기 의지하여 어떻게든 전진을 해보겠지만, 손전등조차 여유분 건전지가 없어 무용지물이었고, 어두운 지리산 피아골 산속에서 정말 암담했다.
    비교적 밤눈이 밝다고 자부해온 나였지만,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그 상태에선 그것조차 별 소용이 없었다.
    계속 전진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눈 쌓인 산속에 있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절박한 생사의 기로에서 진퇴양난이었던 나는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을 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나온 산장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눈을 감았다. 눈부시게 밝은 곳에 있다가 그렇지 않은 곳으로 들어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곳에 있다 눈을 뜨면 오히려 어둠속을 볼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 생각이 맞았다. 한참 눈을 감고 있다 다시 뜨니 사방이 보이면서 깊게 쌓여있던 눈 속에서 우리들이 지나온 발자국들이 보였다. 별빛그림자!였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무사히 산장까지 되돌아갈 수가 있었다.
    세상을 살아내기가 참으로 힘겨운 세월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작은 희망인 손전등조차 없는 눈 쌓인 깊고 어두운 산속에 고립되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였기에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그것처럼,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이 깊은 이 세월 속에서도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사위를 분간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별빛그림자 같은 지혜가 간절하다.
* 조환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2-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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