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핏값을 받는 촛불을 듭시다.

관리자
발행일 2005-12-21 조회수 8

우리는 승리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80년 광주민중항쟁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쟁취하였고,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시켰습니다. 또한 학원자주화 투쟁을 통해 대학에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학생회를 건설했고, 사회에서 경험하지 못한 민주주의를 대학에서 경험했습니다. 공장에서는 민주노조를 세워 노동자들의 인간적이며, 생존권적 요구를 지켰으며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적 경험이 있으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는 소극적입니다. 정말 가능할까 고민하고, 한 발 물러서서 관망만 하는 이도 있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이한열 열사의 사망이 국민운동으로 승화되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투쟁의 중심에 대학생들이 있었고, 가열찬 투쟁은 남한내의 전 지역과 전 부문의 통일적인 투쟁으로 전개되었기에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91년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강경대 열사가 산화했지만 87년과 달리 생활의 이유, 조건의 변화 등을 이야기하며 투쟁이 중심으로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박승희 열사를 비롯해 고등학생이던 김철수 열사까지 분신으로 항거하며 전국민적 투쟁으로 승화시켜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서민이 생존의 벼랑에 몰려 있습니다. 노동자에게는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무력화 정책이, 농민에게는 쌀수입개방이, 청년은 실업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굶어죽게 되었는데 투쟁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투쟁을 했는데 국가권력은 우리 농민을 2명이나 때려서 죽였습니다. 40대의 전용철 열사가, 70을 바라보는 홍덕표 열사가 폭력경찰의 날선 방패와 곤봉에 희생되었습니다.
전용철, 홍덕표 열사는 우리의 고향인 농촌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농약과 중금속으로 오염된 수입 농산물로부터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쌀 만큼은 지키자고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 집회에 참여했고, 폭력경찰에게 희생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사람이 2명이나 죽었는데 책임을 지는 것이 현장 책임자의 직위해제라니 말이 됩니까?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행자부장관과 경찰청장 파면, 현장책임자인 이종우의 구속을 요구합니다.
91년 강경대 열사 타살이후 분노에 찬 박승희 열사의 분신 처럼 더 이상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희생된 농민들이 나와 다른 단체이기 때문에, 또는 우리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 할 수는 없습니다.
밥을 먹는 자라면 우리의 밥상을 지키는 투쟁에서 산화해 간 고인의 핏값을 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물려주고 싶다면 함께 촛불을 듭시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갖고자 한다면 추운 겨울날 동지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함께 촛불을 듭시다.
연말까지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함께 합시다.
오늘 18시 진남관 앞에서 촛불을 듭시다.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