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교조 인가?

관리자
발행일 2009-03-09 조회수 3

  
고교생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늘 긴장하셨다. “이번에도 성적 안 오르면 죽음이야…. 잘 해보자!” 선생님 애간장이 탈 만했다. 교장선생님이 학년별 반 순위를 매겨 평가를 하고, 계속 바닥을 헤매면 리더십을 문제 삼아 불이익을 준다니. 꼴찌 하면 운동장 ‘뺑뺑이’는 기본이요, 밤늦게까지 불호령을 들으며 ‘공부 죄인’이 돼야 했다. 힘들었지만 원망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선생님의 ‘제자 사랑’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30년 전 추억이 떠오른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행보가 답답해서다. 정진후 위원장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다. 열흘이 넘었다.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를 폐지하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대입 자율화 정책 폐기, 3불 법제화, 경쟁교육 철폐도 주장하고 있다. 정부 교육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은 여러 번 밥을 굶었다. 정진화 전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정부의 ‘4·15 학교 자율화’ 조치에, 장혜옥 전 위원장은 2006년 교원 차등성과급 시행에 반대하며 단식을 했다. 연례행사 같다. 정 위원장은 남성이니, 이전 두 여성 위원장보다 오래 버텨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전교조는 어떤 곳인가. 초·중·고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회원인 노동조합이다. 1989년 5월 28일생이니 곧 스무 살 성년이 된다. 초창기 2만여 명이던 회원 수는 한때 9만 명을 넘었다가 7만7798명(지난해 말 기준)으로 줄었다. 교사들은 매달 기본급의 0.8%를 회비로 낸다. 평균 1만5450원씩 떼니 매달 12억원이 걷힌다.
전교조의 ‘참교육’은 초창기 지지도 받았다. 촌지와 왕따를 없애고, 전인교육을 하고, 교단의 권위주의를 추방하고, 교육 민주화를 하고…. 좋은 주장이었다. 나태했던 교사들에게 자극도 됐다. 그런데 변했다. 제자를 위하는 순수한 열정과 초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훌륭한 분도 많은데 집행부 논리에 끌려 권력·이념·정치투쟁에 열심이다 보니 교사 본연의 정체성을 잊은 인상이다. 지나친 편견일까. ‘교육이 미쳤다’며 촛불을 들고 나와 정부를 성토하고, 신성한 가르침은 평가 대상이 아니라며 교원평가제에 반대하고, 1등이나 꼴찌나 한 반에서 똑같이 가르쳐야 하고, 성과급은 균등하게 나눠 가지는 게 미덕이고…. 이런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는 게 편견일까. 그들의 논리가 과연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는 것인가.
기자는 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2월 27일)에 기대를 했었다. 민주노총 간부의 전교조 교사 성폭행 파문 이후 열린 행사인 데다, 전교조 교사 담임 거부운동까지 벌어지는데 위기감을 느끼고 반성과 대책이 나올 줄 알았다. 순진했다. 성폭력 사건에 추상 같았던 예전과 달리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도덕성이 생명인 교사들도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생각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제자를 잘 가르칠까’하는 고민보다는 대정부 투쟁 논의와 결의에만 열을 올렸다.
답답한 일은 또 있다.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의 반 리우벤 사무총장을 9~11일 초청해 학업성취도 평가를 포함한 ‘MB 교육정책’ 폐해를 보고한다는 것이다. EI는 세계 172개국 401개 회원 단체, 2900만 명의 교사가 가입해 있는 세계 최대 교원단체다. 시험을 통해 학생·학교·지역 간 학력 차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이고, 교사의 책무다. 그런데 일부 성적 조작 문제를 빌미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교육을 망치는 일로 규정해 국제 사회에 알리겠단다. 누굴 위한 전교조인가.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존재하고, 좋은 교사의 기본은 잘 가르치는 것 아닌가. 전교조 교사 명단을 떳떳이 공개할 수 있고, “내 담임은 전교조 선생님”이라고 자랑하는 제자가 많아야 참교육이 성공하는 것 아닌가. 스무 살 전교조가 답답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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