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난지도 골퍼들이 양보하라!

관리자
발행일 2005-10-10 조회수 6

[백화종 칼럼] 난지도 골퍼들이 양보하라

[국민일보 2005-10-09 18:42]

“종일 산야를 헤매었어도 봄을 보지 못했더니,돌아와 울타리의 매화 향기를 맡으니 봄이 이미 가지 끝에 무르익었더라.” 옛 시인의 노래다. 세상의 이치가 무릇 이러하리라. 슬기로운 사람은 마당의 오동나무에서 지는 잎 새 하나에서도 가을의 소리를 들으려만. 기자와 같이 어리석은 인생은 가을을 마중 한답시고 산과 들을 찾아도 빈 가슴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지지난 주말에 난지도의 하늘공원을 찾았다. 너무 좋았던 작년 가을의 그 억새꽃 물결을 떠올리며. 그러나 옛 시인의 노래대로 그곳에선 아직 가을을 보지 못했다. 억새 꽃술이 붉게 패긴 했으나 아쉽게도 하얗게 만개하기 위해선 얼마간의 날짜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기자만큼이나 성급한 사람이 많았던지 공원과 그 주변엔 수만으로 헤아려지는 인파가 북적였다.
하늘공원 건너편에 골프장이 있다고 했다. 같은 난지도의 한편 노을공원에 조성된 9홀짜리란다. 요즘 서울시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소유권과 운영 방식을 놓고 싸우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가족공원으로 바꾸자고 캠페인을 하고 있는 바로 그 골프장이다.
서울시내에서,그것도 한강이 발밑에서 흐르고 멀리 북한산과 남산 등이 바라다보이는 잔디밭에서 골프채를 호쾌하게 휘두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당분간이지만 입장료가 공짜라니 골프 마니아들로선 꿈만 같을 것이다. 앞으로 입장료를 받는다지만 그래봤자 9홀에 평일엔 1만7000원,휴일엔 2만3000원이라니 골퍼들은 입장만 한다면 횡재를 하는 셈이다.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 18홀을 돌려면 보통 20만원 이상이 드는데 이곳에선 그 5분의1 내외의 비용이면 충분하니 말이다.
그 정도의 돈으로 그것도 서울시내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돈 많고 시간 여유 있고 좋은 친구들을 둔 ‘귀족’들이나 즐길 수 있던 골프가 이제 보통 사람들도 즐길 수 있고 대중 스포츠가 됐으며,그래서 우리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뽐낼 만도 하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서울시민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난지골프장이 요즘엔 하루 60팀 240명을 받는다고 한다. 이용객 숫자는 늘려 잡아도 연간 8만명을 넘지 못할 것 같다.
시민단체들은 약 6만평의 이 골프장을 공원으로 바꾸면 하루에만 10만 시민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골프장일 때 1년의 이용객 수와 공원일 때 하루의 이용객 수가 맞먹는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겨우 흉내내는 수준이지만 이따금 골프장을 찾고 있으며 그래서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도 아니다. 오히려 빨리 골프장이 남아돌 정도로 증설돼 서민들도 골프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비용이 싸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난지골프장 문제에서만은 시민단체들 편에 서고 싶다. 6만평의 녹지가 하루 240명 안팎 사람들의 놀이터로 제공되기엔 서울이 너무 비좁기 때문이다. 우리의 처지로선 아직도 소수 골퍼들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일보다 절대 다수 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믿는다. 주말에 서울시내 공원과 청계천 그리고 근교 산들에 서로 비끼기도 힘들 만큼 몰리는 인파를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기자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사실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일 것이다. 그러니 난지골프장을 생활에 지친 서민들의 쉼터로 돌려주고 골퍼들은 수고와 돈이 얼마간 더 들더라도 교외의 골프장을 찾는 게 공동체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이지 싶다.
골프장 건설에 146억원이 들었고,법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어 공원으로 바꾸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골프장보다 공원의 효용가치가 높다면 146억원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우리들의 뜻만 모아진다면 법적인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난초와 지초의 섬. 꽃 향기대신 쓰레기에 덮였다가 신의 은총으로 겨우 되살아난 이 섬이 다시 인간들의 볼썽사나운 다툼에 끼였다. 이 섬이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고 야생의 낙원이 돼,기자처럼 집안에 있는 계절을 못 보고 산야로 그걸 찾아 나서는 필부필부들을 포근히 맞아줄 날을 기대해본다.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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