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충조의원님을 왜 역적으로 규정했는가?(글쓴이 : 피투성이)

관리자
발행일 2003-02-10 조회수 54

나는 김충조의원님을 왜 역적으로 규정했는가?(글쓴이 : 피투성이) (정짱)
살생부사건이 터진 이후 특히 김충조의원의 플레이가 현란하다. 물론 현실정치인으로서 당사자의 마음이야 얼마나 조급하겠는가?? 그러나 언론에 인터뷰를 하고, 고소고발을 하고, 심지어 나에게 김충조의원의 아드님이 메일까지 보내고, 보좌관들이 모두 발벗고 나서서 해명하는 모습은 좀 오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분명히 김충조의원을 살생부에서 역적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로 겁없이 반노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필히 퇴출대상이라는 평가를 붙였다. 당사자는 펄쩍뛰고 있고, 나는 김충조의원을 역적으로 규정했으니.. 이제 내가 죽느냐 김충조의원이 물러앉느냐 둘 중의 하나만 남았다.
이제와서 내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해봤자 엎질러진 물이다. 나로서도 왜 김충조의원을 역적으로 규정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들이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분명히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서 김충조의원을 역적으로 규정했다.
공장다니는 나로서는 김충조의원을 사적으로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원한을 품은 적도 없음을 밝힌다. 오로지 언론의 창에 드러난 김충조의원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우리 마음을 열고 김충조의원의 지난 행위에 대해 추적해보기로 하자!!
내외경제신문 2002년 10월 18일자를 보자!!
때는 바야흐로 철새정치인, 보따리정치꾼들이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무지하게 당내분란을 일으키고, 노무현후보를 흔들던 바로 그 즈음이다. 밖에서는 정몽준씨가 솔솔 연기를 피우면서 철새들을 유인하던 바로 그 때다. 정통성을 지닌 민주당의 50년 역사와 정체성을 송두리째 재벌에게 날려버릴 수도 있던 한국민주주의의 중대기로였다.
4선의원이신 김충조의원님께서는 과연 이 중대기로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가??? 바로 내외경제신문 2002년 10월 18일자에서는 분명히 김충조의원을 후단협의 멤버로 규정하고 있다. 김원길, 박상규, 설송웅, 김영배, 김명섭의원과 더불어 분명히 김충조의원을 후단협의 일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는 단 한번도 김충조의원이 내외경제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거나 강력히 항의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아무것도 아닌 공돌이만 붙잡고 이 무슨 협박인가?
아직도 인정하기가 그렇다면 국민일보 2002년 11월 10일자를 꼼꼼히 살펴보자!!!
당시 역적들은 단일화협상추이에 따라 모종의 정치적 결단을 내릴 것임을 수차례 공언했다. 이인제의원은 "정치인은 세계관과 가치관이 같은 사람끼리 집을 지어야한다."는 식으로 가장 기나긴 경선불복, 민주주의를 짓밟는 쿠데타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고, 여기에 그의 서울법대 동창인 이협의원과 또한 선배인 박상천의원 또한 장단을 척척 맞춰주고 있었다.
박상천의원은 단일화가 결렬될 경우 탈당할 뜻을 비췄고, 국민일보 2002년 11월 10일자는 박상천의원의 탈당에 동조할 의원으로 유일하게 김충조의원의 실명을 거론했다. 나는 김충조의원이 조용기목사 아드님에게 항의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왜 하필 공돌이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인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 만만한게 공돌이인가???
그래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함께 다정히 오마이뉴스 2002년 10월 7일자를 살펴보자!!!!
우리 당선자님께서 그 당시 지지율하락으로 노심초사하던 시점이다. 정말 힘들고, 외롭게 대선을 향해서 전진해나가던 시점이다. 우리 4선의원 김충조의원께서는 과연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눈에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반문하고 싶다. 무슨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왜 눈에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셨느냐고....
오마이뉴스 2002년 10월 7일자를 보면 강운태,박상천,김경천의원과 함께 지역을 대표해서 김충조의원이 후단협서명에 참가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일반 국민 가운데 나 정도로 노무현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한번도 김충조의원이 후보를 수행해드린다거나, 힘을 실어주었다거나 하는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본래 김충조의원은 진작부터 이인제진영에 속해 있었다. 2001년 12월 26일 김영배의원이 주최한 자리인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여서 안동선,김옥두의원등과 함께 이인제대세몰이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할말을 하는 신문을 2002년 1월 8일자를 구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할말을 하는 신문 2002년 11월 10일자도 탈당을 결행할 호남의원으로 분명히 김경천의원과 더불어 김충조의원을 꼽고 있다. 제발 나에게 화를 내지 말고 조선일보 방회장님께 따지기 바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 또 하나있다.
바로 2002년 8월 16일 민주당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때 김충조의원은 바로 사회를 보았다. 그 당시 편파적인 사회진행으로 천정배의원과 이호웅의원, 이상수의원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음은 그의 성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아일보 2002년 10월 4일자의 친절한 설명을 보면 반노측 후보단일화협의회 발족이라는 제목에 추진협의회 기구표라고 도표까지 자세히 만들어서 우리 김충조의원께서 전남지역을 대표하여 부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고계셨음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신당창당을 주장하는 반노,비노파들이 설칠 때 노무현후보는 선대위구성이라는 정치적승부수를 던졌다. 김충조의원에게 중앙선대위 부집행위원장 자리를 권유했다. 김충조의원은 거부했다. 며칠전 여러가지 구구한 설명을 하긴 했지만 곧이 들리지가 않는다. 위기에 직면한 자당의 후보와 선대위에 그 어떤 도움을 주었다는 증거도 안보인다. 오히려 박상천의원,이협의원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선대위에 부담을 주고 노무현후보를 흔들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노무현후보께서 절규하시던 기억이 난다. 김충조의원이 열심히 신당창당과 후보단일화노력을 하실 때 " 권력투쟁에도 규칙이 있다!!" 고 부르짖던 노무현당선자님의 분노에 찬 절규가 김충조의원을 역적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했다.
반노행각이 역적질이 아니라고 강변한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정치적인 나의 주장을 한낱 네티즌의 허위사실유포로 치부할 수 있는가????????? 왜 언론사들이 자신을 반노진영의 핵심인물로 보도할 때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았는가?? 내가 김충조의원을 역적으로 규정했을 때 왜 댓글을 달지 않았는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일이지, 왜 한낱 아무 힘없는 시민의 풍자적인 글을 고발조치했는가??
당권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오바하는 것이라면 즉각 중단하라!!!!!!!!!!!!!!!! 나로서는 졸라 무섭다. 김충조의원은 대답하라!!!!!!!!!!!!!!!! 어쨌든 아드님께서 착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우리 아버지를 왜 역적으로 규정했느냐고 추궁했을 때 나 또한 가슴이 아팠음을 밝힌다. 그러나 김충조의원은 나에게 이웃집아저씨가 아니라, 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정치인이고 공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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