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막소독약으로 모기 잡으려다 사람 잡을라

관리자
발행일 2005-09-06 조회수 9





[한겨레]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보건소 10곳 가운데 6곳 꼴로 살충제에 주로 쓰이는 4가지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 들어간 연막소독 약품을 뿌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 약품은 약사법상 허가를 받아야 생산·사용할 수 있으나 국내에 허가제품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가 이기우·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246개 보건소 가운데 7곳을 뺀 239곳이 연막소독을 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한겨레>가 류병호 경상대 식품공학과 교수에게 맡겨 보건소들이 사용하는 약품들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139개(58.2%) 보건소에서 △사이퍼메스린 △디클로르보스 △클로르피리포스 △카데스린 등 4가지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 들어간 연막소독 약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1일 밝혀졌다.
이들 물질은 살충제에 들어있는 주요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며, 내분비계나 신경계, 각막 등에 해를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사이퍼메스린은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이 지정한 내분비계 장애물질 67종 가운데 하나로, 국내에서도 취급제한 등 규제 물질로 지정돼 있다.
b>전국보건소 239곳 허가 안받은 제품 살포
내분비 장애 ‘취급제한’물질도 섞여 있어
당국 “유해성 평가뒤 조처” 사용금지 유보
시·도 보건소별로 분석해보면, 경기도가 가장 많은 24개 보건소에서 이들 물질이 들어간 연막소독 약품을 쓰고 있었다. 이어 △경북 20곳 △경남 18곳 △강원 13곳 △전남·충북 10곳 △전북·충남 8곳 △부산·인천 5곳 △광주·울산 4곳 △서울·대구·대전 3곳 △제주 1곳 순이었다.
류병호 교수는 “이런 물질은 피피비(ppb, 10억분의1) 단위의 극미량으로도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며 “연막소독 약품에는 리터당 0.5~36g이 들어 있어 물에 희석하더라도 얼마든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보건 당국은 연막소독 약품에 이들 성분이 들어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기 전에는 사용 금지 조처를 취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98년부터 유해화학물질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하지만 올해까지 유해성 평가기법을 마련한 뒤 내년에야 평가에 들어갈 방침이어서, 개별 성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입증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이에 견줘 미국은 1996년 의회에서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유해화학제품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 뒤, 곧바로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대한 연방 자문위원회(EDTAC)를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현재까지 69가지 물질을 우려물질로 선정해 관련대책을 강구 중에 있다.

일본은 환경청에서 1998년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이 정한 67종과 국립의약품식품위생연구소에서도 143종을 우려물질로 지정해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디클로르보스를 발암가능성물질로 분류하고, 클로르피리포스, 사이퍼메트린의 독성정보를 이용해 허용가능 섭취량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들 물질에 대해서는 한때 부작용을 알지 못해 안전한 것으로 취급됐으나 지금은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킨다고 의심받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연막소독 중단모임을 벌이고 있는 정세영 ‘연막소독중단모임’ 준비위원장은 “보건 당국도 연막소독이 사람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 독성물질을 무차별적으로 뿌려대는 행위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에 연막소독 약품 가운데 허가받은 제품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막소독 약품은 지난 2002년부터 허가제품에 한해 생산·사용할 수 있도록 약사법상 의약외품에 포함돼, 허가받지 않은 약품으로 연막소독하는 것 자체에 불법성 소지가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약사법 개정 뒤 기존 약품 생산은 중단됐으나 새 제품 허가가 나지 않아 재고물량을 쓰고 있다”며 “약사법 개정 전에 생산된 약품이어서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집계 자료를 보면, 올해 전국의 보건소에서 14만968리터를 새로 구입했고, 7월말까지 15만3963리터를 사용했다. 또 전남이 이 기간 동안 6만268리터를 쓴 반면 대구시는 전남의 0.72%인 345리터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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