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치의 새로운 바람

관리자
발행일 2011-09-07 조회수 5











[지영선의 초록희망] 녹색정치의 새로운 바람











언론인, 환경연합 공동대표

지구상의 진정한 생산자는 오직 식물뿐이다. 햇빛과 물과 흙의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생산하는 기적을 만드는 것은 식물뿐이다. 그들이 만든 열매와 잎과 뿌리를 초식동물이 먹고, 그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는다. 우리의 모든 양식은 초록색 식물에서 온다. 녹색이 생명과 평화와 치유를 상징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녹색바람이 불고 있다. 어쩌면 녹색과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정치를 녹색화하려는 움직임이 요즘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다. 녹색정치운동이다. 물론,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녹색성장'의 녹색과는 다른 녹색이다.

얼마 전 장기표씨가 녹색사회민주당을 창당하겠다며 발기인 모집에 나섰다. 정보공개센터 소장 하승수 변호사, 서형원 과천시의원,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장 등은 2014년 지자체선거를 목표로 녹색당을 창당하겠다고 한다. 오성규 전 환경정의 사무처장, 최승국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 등은 녹색정치포럼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처럼 스스로 나서지 않더라도 '녹색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녹색당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라는 극단적 토건개발, 반생명적 구제역과 살처분 사태, 거기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라는 환경재앙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런 일들을 막아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리라.

또 우리 사회에는 지난 십여 년 새, 굳이 환경주의자가 아니라도, 지나친 물질과 성장 위주의 생활방식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생활협동조합의 성장, 꾸준히 늘어나는 귀농자들, 대안교육 대안의료를 찾는 사람들, 또 실행에 옮기지는 못 해도,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삶에 대한 목마름의 표현이다.

'사회정의' '비폭력' '자연과의 공존'

'녹색정치'란 무엇일까. 단순히 환경만을 내세우는 정치를 뜻하는 것 같진 않다. 물질과 권력의 지배, 인간의 도구화 등 권위적인 기존정치에 대한 대안정치가 아닐까 싶다. 인터넷사전 위키피디아는 녹색정치의 핵심으로 '사회정의' '풀뿌리민주주의' '비폭력'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꼽았다.

실제로 1980년 창당된 독일의 녹색당은 무척이나 다양한 사회운동세력들의 결집체였다. 독일에 핵미사일이 배치되는 것을 반대해온 평화운동 세력, 어린이와 여성의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생활정치세력, 원전과 지나친 개발을 반대하는 다양한 환경주의자들이 한데 뭉쳤다.

녹색당은 대안적 주장만큼이나 당의 운영도 파격적이었다. 당내 민주주의와 기회의 공유를 중시한 이들은 남녀 두 명의 당 대표를 두고, 비례대표 연방의원의 4년 임기를 2년씩 두 사람이 나눠 맡기까지 했다.

이렇게 전혀 새로운 정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힘입은 바 크다. 독일에서는 정당의 득표율(최소 5%)로 각 당의 전체 의석수를 정한 후, 지역구에서 당선한 의원수를 뺀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운다.

녹색당은 83년 총선에서 5.6%를 얻어 29석의 의석으로 연방정치무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1998년 사민당의 연정파트너로서 집권당이 된다. 핵무기와 핵발전 반대를 정강으로 하는 녹색당의 연정참여로 독일은 원전 포기라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이 결정은 보수적인 기독교민주당이 집권한 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 완전 폐쇄의 시기를 12년 늦추는 쪽으로 잠시 완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보수 연정의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당초 결정으로 되돌아갔다.

환경재앙이 일깨운 '녹색당' 필요성

이제 환경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지면서 2013년 총선에서 녹색당 출신 총리의 탄생도 점쳐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석유문명 이후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에 독일로 하여금 맨 앞장에 서게 하는 역할을 녹색당이 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막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한국의 녹색정치 바람이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둔 복잡한 정치지형 속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릴지, 어떤 잎과 꽃을 피워낼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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