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제학의 현장실천사례

관리자
발행일 2009-08-26 조회수 16

생태경제학의 현장실천사례
-이무성(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서울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여수로 내려 온지도 한 10년쯤 된 것 같습니다. 그간 돈 몇 푼 벌기위해 내 자존심도 버려가면서 직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생존의 몸부림들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잣대만큼 세월의 길이가 흘렀습니다. 서울을 벗어나면서 우선 차를 처분하는 등 철저히 지출도 줄어가면서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충당하기 위한 수입 활동에 절대적인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고 TV도 없애면서 생활의 단순화를 최대한 꾀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자본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책도 읽고 여행도 두루 다녀보는 나의 생활을 비로소 찾았던 것입니다. 주변의 선한 사람들과도 뜻을 모아 가면서 내가 꼭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나 개인의 욕심이 아닌 이웃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접근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났습니다. 도시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극히 주관적인 판단 하에 선택한 지역이 몇 지역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농 복합지역으로서 섬이라는 어촌까지 접근이 가능한 여수였습니다. 그간 제가 의미 없이 겪었던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후세대에게 되풀이되지 않게 할 수 있는 틀로서 녹색대학 등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초기에는 현장에서 이를 실현하고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익숙하지 않는 조직 환경이라서 그런지 본래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보다는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설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에 대한 학습효과로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인가는 순환적인 생태모형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로서는 우리의 무의식속에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강력한 지도력에 의한 효율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지요. 느림의 미학이 갖는 장점에 대하여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계기들이 없었다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또한 인간의 소외현상을 가속화 시키고 있는 분업의 대안으로서 상호의존적인 협업으로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중요성도 간과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 고립된 지역으로서 도서지역인 섬으로 향토문화에 대한 심층조사를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발품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이제는 많은 소중한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영속적인 지구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지속되어야 할 삶의 방식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여수 인근 어촌지역의 경우에는 지형 등 연안지역의 깊이나 가파른 바위 등에 적응하여 생태적인 순환 경제체계에 이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익숙하여져 왔음을 지식이 아닌 실증으로 확인도 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질, 깊이, 서식 어패류 등의 서식지 등을 몸소 체험을 통하여 터득하여 왔었습니다. 자원과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들의 생태적인 순환을 무시한 고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획일적이면서 단기간에 많은 성과물을 올릴 수 있는 기계류 등을 통하여 자원 남획을 함으로써 어로지역을 초토화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바다에서 어족의 고갈에 대비하여 저인망 어로작업으로서 유치기에 있는 어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대 고리를 금함으로써 인위적인 순환형태로서 생태계 복원을 부분적으로 행하기도 합니다. 과거부터 어민들은 토착지식을 익숙하게 습득함으로써 어로 획득의 수량과 종류, 때와 곳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패류, 해조류가 가진 높은 양분들을 분업에 의하지 않는 오래전부터 전승해 온 협업방식을 통하여 경제활동에 필요한 수량만을 채취함으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자연스런 생태경제학의 순환성과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경제 질서들이 자리를 잡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시기 ‘표’만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사적인 이익을 앞세운 행위로 인하여 공익보다는 사익이 그리고 장기적인 목적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위주의 외부로 드러나는 정책의 집행으로 인하여 자본주의의 폐해로서 정치와 경제의 비도덕적인 결탁으로 인하여 오랜 기간 지속된 순환 형 생태경제계는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습니다. 특히 섬이 갖는 특성으로서 고립성이 연륙으로 인하여 경제력으로서 자본력이 집중된 지역으로서 중심권에 편입됨으로서 자체생산, 소비의 기본골격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출직 단체장 등 정치인들은 그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미 투입된 선거자금의 회수와 차기 선거에 필요한 정치자금의 확보라는 사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하여 겉으로는 주민들의 생활 편의성을 앞세워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정책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건설업이 으뜸인 국가에 속합니다. 경제의 기본구조가 건설이기에 이를 유지하기 위한 개발위주의 성장만능 정책이 궁극에는 위기에 도달할 수밖에 없음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바퀴 자전거처럼 현 경제는 그냥 파국을 향하여 굴러가고 있는 셈이지요. 산업화 초기엔 어느 정도 개발위주의 성장전략은 국가의 절대적인 권력의 뒤받침에 의해 가능하였고 이에 대한 문제점들도 일반인들은 크게 의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최근 국내외 경기의 급격한 퇴조라는 흐름에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국가가 개체로서 국민들의 경제적인 삶을 책임질 수 없음을 일반인들은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향후 도래할 사회는 국가라는 형식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의 기능은 이전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여 사는 이웃들이 마을단위로 자신들의 생활들을 그 공동체 특성에 맞게 재편성되는 시대로의 전망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처럼 서로의 의존이 없더라도 분업에 의하여 자신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한 분야에서만 필요로 하는 인간소외의 체제는 분명 해체될 것입니다. 서로 의존이 없이는 더 이상 사회생활이 유지될 수 없는 협업에 의한 경제체제로의 복귀는 필연적입니다. 효율이 더 이상 조직체의 목표일 수 없는 시대는 예고되고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에 대한 조절 없는 남획은 생태계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가 미덕이 아닌 절약이 미덕 더 나아가 생태경제계의 복원을 약속하는 시기는 보편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얼마 전 여수에서 저희 연구소와 문화인류학계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학술 심포지움에서 인류학자의 관점으로 본 지속가능성에 대한 많은 고민 점들이 제시되고 이에 대한 활발한 토론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결론으로 생태경제학이 지역적으로 가능한 곳은 자본주의 방식의 성과위주 방식이 이행되고 있는 공간이 아닌 고립적이면서 전통적인 문화방식이나 생활방식이 많이 녹아 있는 주민자치가 가능한 자연마을 단위라는 것이었지요. 현재 한국에는 86,000개의 전래되어 온 마을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중 절반가량이 도시에서 상징적인 명칭으로만 존재하고 있고 그나마 나머지 마을도 마을로서 기능인 공동체적인 흔적도 급격히 지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태경제의 현장 사례들을 재현할 수 있는 마을단위의 해체는 한국을  희망 없는 사회로 더욱 내몰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전북 진안에서 마을 만들기 현장적용을 통하여 이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있는 구자인님 등의 노력으로 마을을 매개로 한 생태경제 현장 사례들도 많이 구현되고 있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지 않는 그 어떤 활동들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사실도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간만으로서 물살을 이용한 석방렴으로 자연스럽게 물고기가 들어오고 빠져 나가는 것을 기다려 어로를 하는 사례나 간조의 한정된 시간 내에 ‘쪼새’와 같은 손의  연장에 불과한 도구로 굴을 파는 채취행위입니다. 동시에 고립된 섬으로서 ‘뜸’과 같은 사회조직은 해안을 일정한 면적만 점유하고 해조류, 어패류 채취 및 전통적 억압적 강제력에 의한 상호 감시로 지속가능한 어로를 실현이 가능하였습니다. 여수에는 해방이후 여순사건이라는 이념적인 아픔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특히 섬 지역을 방문하면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주 접합니다. 역사적 상황에 의하여 좌, 우의 한쪽 편에 서기를 강요당하였던 그 시기에 가해자와 피해자 거꾸로 역할이 바뀌어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상당기간 한 동네에서 생활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큰마음의 상처를 갖고 살면서 서로 적대적이지 않고 공생적인 것은 어로행위 자체는 상호간의 도움을 받아 생업을 이어가야 하기에 가능하였다는 제 나름 짐작을 해 봅니다. 다투고 심지가 뒤틀려도 분업에 의하여 처리할 수 없는 협업방식의 전통적인 생활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지요. 협업은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동시에 동일한 공간에서의 다른 사람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산업화에 의하여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든 경우에도 협업방식의 상호의존적인 대상은 있어 왔었습니다. 지금은 자동화로 인하여 분업체제로 편입된 버스 기사와 버스 차장의 역할 매김이 협업 방식 그 자체이었지요. 운전기사 분들이 동시에 승차와 하차 그리고 요금을 수납하는 업무를 할 수 없어 이를 담당할 협업자로서 버스 차장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분업방식으로 전환시켜 더 이상 일반 버스에서 협업의 존재를 이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으로서 일을 할 수 있는 대상이지요.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은 시대의 고금을 그리고 동서 어디에서나 위정자들의 우선적인 정책과제이지요.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생산방식으로는 생산방식의 고도화를 통하여 이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위정자들의 겉으로 내세우는 논리와는 달리 특정 계층으로서 위정자 자신들을 포함한 일부 소수자들에게 부를 집중시켜 줌으로서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업으로 바뀐 영역에 협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함으로써 자본이 아닌 사람이 중심인 현장 사례를 넓혀 가는 것이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계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경제학으로의 현장구축을 하는 것이지요.
   순환 형 생태경제는 적용이 가능한 한 지역을 기축으로 이를 고리로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주변의 귀농자들의 사례를 통하여 현지의 적응과정의 중요성을 엿보기도 합니다. 도시 등의 삶을 정리하고자 하는 이들은 나름의 준비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공간을 선택하고 귀농에 따른 이론적인 무장도 갖추고 현장에 내려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현지 주민들과의 소통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철저한 만큼 이웃에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는 것에 대하여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셈이지요. 주민들과의 어울릴 수 없는 생활 때문에 다시 도시로 복귀하거나 아예 다른 거처를 찾아서 옮겨가는 사례들을 자주 접합니다. 도시에서 귀농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먼저 귀농 전 현지의 상황이 생태적인 순환생활을 하고자 하는 자신에게 적합한지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자신의 생활을 맞추어 나가는 겸손의 자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들과 어울려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섬기는 모심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갖는 문화 등을 천박하게 여기지 않고 그 문화에 함께 동화되는 자세는 기본입니다.
    아쉽게도 농어촌의 경우에는 당제 등 마을 자체의 오랫동안 내려 온 고유한 풍습이 단순히 타파해야 할 미신 등이라는 몰이해로 인하여 급격히 소멸되었고 그나마 일부 고립된 지역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도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는 일부 종교의 제국주의적인 배타적인 전도방식에 의한 부작용입니다. 작년에 금오도와 인접한 안도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마을 인근에 방치된 채 남아 있는 수백 년 이어 온 당제를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마을의 상징성으로서 향후 마을의 유산으로서 이를 잘 보존토록 이장께 거듭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행정관청의 몰이해로 그 자리에 생활체육시설이라는 도저히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을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도시의 흉허물을 그대로 본을 따서 설치하였습니다. 전통과 단절된 생태경제는 그 의미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순환과 상호 협업에 의한 의존성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경제는 투입 대비 산출로서 효율이라는 단 하나의 성과가치로 측정하는 기존의 자본주의 방식과는 다른 고유한 삶의 형태가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어울려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연훼손과 자원남획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 없는 자본주의는 성장 끝에 추락이라는 그 파국으로서 그 결과를 분명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경제는 생태적 순환, 상호의존으로서 협업, 다양성의 인정 등 기초학문으로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현대에도 소통 가능한 공간을 범위로 획일적이 아닌 현지 주민들의 삶의 한 형태로서 자연스럽게 재생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이상적인 공동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는 않고 종교를 배경으로 한 단일 이념 지향의 공동체만이 상대적으로 더 오래 지탱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태경제는 자연 순환의 기본인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고 이미 곳곳에서 이에 대해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경험들도 인류의 소중한 자산으로 전승 해 오고 있어 다양한 형태로 적용 가능합니다. 현 시대의 사람들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지속적인 산출이 가능한 생태계 보고를 남획함으로서 인류공멸의 위기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여수에도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자연과의 합일을 통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많은 경우를 접하고 있습니다. 2시간 남짓 배를 타고 도달할 수 있는 여수 남단의 솔개 섬으로서 소리도 덕포리에 정착한 부산 태생의 김본식님은 10년 전 우연잖게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현장인 이 섬을 왔다가 주민들의 삶의 방식에 이끌려 그냥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주민들과 동화하여 이젠 이 지역에서 이장역할까지 하면서 도시에서는 돈벌이 목적으로만 수행하였던 자신의 목공기술을 주민들에게 그냥 품앗이로서 제공해 줌으로서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50대 후반에 접어 든 그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가지의 욕심만 포기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순환 형 생태경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면서 자신도 너무 늦게 이를 체험한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도시처럼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지 않는 섬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흡사 시간이 멈춰 있는 듯 여유로움이 항상 배어 있었습니다. 그 여유로움이 인간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하는 가 봅니다.
   최근 소리도를 방문하여 해상환경 재난으로서 기름유출이 소리도에서 더 이상 재앙이 아닌 복으로서 지역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14년 전인 1995년 그 사고발생 날짜에 예전 민속놀이로서 재앙을 날려버리는 연놀이도 하고 솔개형태의 종이배도 띄우면서 소리도에 대한 지난 아픔을 한국 최초의 해양재난의 산 교육장으로서 주민들이 참여하고 그 중심이 되어 그 지역의 역사성을 살려낼 수 있는 첫 시도를 14년이 흐른 금년 7월23일 좌초된 그 현장에서 진행코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민들도 자연적인 순환 형태로서 생업방식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최근 매립된 갯벌에 대한 자신들의 과오도 솔직히 인정하면서 예전의 협업으로서 삶의 복원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는 현안에 대하여 현지 주민들과의 지속적이면서 구체적인 현장 적용의 실천적인 참여에서 주민들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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