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민은 로버트 김을 잊어버렸는가?

관리자
발행일 2003-01-31 조회수 7

제목:545. 우리 국민은 Robert Kim(김채곤)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첨부파일:   작성자:李康寅  작성일:2003-01-05    조회수:127    
  
먼저, 10 페이지가 넘는 긴 글입니다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자 로버트 김(김채곤)을 알고자 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이라 고 사료되오니, 시간을 내어 필히 일독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우리 여수가 낳은 진정한 애국자 로버트 김(김채곤) 형이 간첩혐의로 구속된지 햇수로는 8년, 만으로는 7년 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국민이 망각증이 심한 민족이며, 냄비 같은 성격이 있다고는 하나 환갑을 넘긴 애국자가 차가운 이국의 감방에서 또 한번 해를 넘기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음을 보고 인간사의 야박한 인심에 다시 한번 서글픔을 느낍니다.
지금도 서울 광화문을 위시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SOFA개정을 목표로하는 효순,미선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젊었을 당시, 한 때는 반미주의자의 입장에 슨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50중반에 이른 지금은 단순한 반미감정을 넘어, 미국을 비판하는 批美주의자 입장에 서 있음을 먼저 고백코자 합니다.
남북분단이라는 한국이 처한 입장을 두고 볼 때,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미군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주둔한 50년을 기점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미군을 보는 우리의 잣대가 변화해 왔듯이, 미국 자체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계속 변해왔음은 사실입니다.
오늘 2003년 1월 5일 현재,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미국과 우리 사이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상호관계는 과연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도 강추위를 참아가면서 촛불집회를 계속하는 숭고한 모습을 보면서, 오늘 제가 글을 쓰는 화두인 [로버트 김(김채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1996년의 한국의 안보상황이 북한의 모험주의자들에 의해 계속 도발적인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던 시점에서, 허약한 김영삼 정권은 집권 초부터 강력했던 클린턴 정부에게 변변한 발어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집권 말기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의 애국자 김채곤은 [이스라엘]과 [중국] 출신의 미국인들이 똑같이 비슷한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한국계 미국인] 혼자만이 간첩혐의로 기소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을 향해 할 말은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이번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SOFA개정 문제를 다룰 때 , 어떤 의미에서는 또다른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형사,사법적 조치의 결과물]인 김채곤의 문제도 함께 거론되기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님께 희망하는 바입니다.
마침, 천학비재한 본인의 필력과 논리를 능가하는 신기섭(시인) 동지가 어제 인터넷 상에 Robert Kim (김채곤)에 관해 쓴 귀중한 글이 있어, 우리 고향 사람들과 이를 함께 나누고자 전재하오니, 비록 너무 분량이 많은 글이지만 끝까지 일독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이하, 전재한 인용문입니다. ------
지난해 6월 의정부 지방도로에서 주한 미군 장갑차에 깔려 꽃다운 여중생 미선, 효순 양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부시 대통령 직접 사과와 SOFA 개정 요구 시위는 2002년 성탄절 이브와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던 연말 마지막 밤까지 광화문, 시청 광장을 수만의 인파로 메운 가운데 연일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미관계는 노무현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민의 자긍심과 자주, 주권회복이라는 해묵은 숙제와 연계되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아울러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에 따른 IAEA 사찰단 철수로 북미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남북관계 재정립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우리는 효순, 미선양의 비극적인 사망사건과 가까운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격장 논란, 미군부대 독극물, 폐유 방기, 용산과 구 경기여고 자리 아파트 건립 논란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1996년 9월 국가기밀누설 간첩죄의 혐의로 미 FBI에 체포된 후 미 연방법원에 기소되어 9년이라는 장기형을 언도 받고 벌써 7년째 철창에 갇혀 부당한 인권침해와 감형을 조국을 향해 호소하고 있는 ‘로버트 김’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잊고 있다.
최근 들어 그의 인권과 감형, 한국 정부의 책임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움직임조차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국제 정보의 결여로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을 보다 못해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능한 정보를 조국에 보내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한 채 고도절해와 같은 미 동부 펜실바니아의 한 감옥에서 환갑이 넘은 생을 보내고 있는 분단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말대로 남북 분단이 없었다면 자신이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과 제공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고난은 미 국가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장받은 안락한 삶을 뛰어넘어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헌신을 서슴치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미국에 이민간 한국민의 살아있는 지성이자 양심이다. 우리 한국민이 반드시 보은해야 할 큰 빚을지고 있는 분이다. 또한 로버트 김을 재조명하는 일이야말로 한미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현 시점에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나는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촛불의 행렬과 그 질서정연한 흔들림 속에서 꺼져갈 듯 다시 타오르는 한민족의 유구한 생명력과 그러한 생명력을 있게 한 무수한 선열들의 넋이 효순, 미선양의 애처로운 영혼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로버트 김의 우국충정과 조국을 향해 끊임없이 구원을 청하는 그의 절박한 음성을 들었다. 로버트 김, 우리 국민은 2003년 신년 벽두에 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가슴에 아로새기며 그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로버트 김은 누구인가]
‘김채곤’이 한국명인 로버트 김은 70년대 초 박정희 전대통령 유신시절 당시의 인권 억압적 정치상황에 실망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간 분이다.
그는 20여 년간 미국 해군성 정보분야 문관으로 근무하면서 근면 성실한 공무 집행으로 표창을 받기도 할 만큼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런 그가 96년 9월 미 군사관련 정보를 한국 국방부 관리에게 제공했다는 이유로 면직됨과 동시에 간첩죄 혐의로 기소되어 미 연방정부 법원으로부터 9년형을 선고받고 7년째 미국 동부 알렌우드 형무소에서 장기 복역하고 있다.
국내에서 경기고,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현재 감옥에서 쓸쓸히 62세의 노년을 맞고 있다. 그를 위로, 격려하는 서신은 아래 주소로 보낼 수 있다.
현 주소: Robert Kim (49756-083)
Low Security Correctional Institution-Allenwood
P.O.Box 1000
White Deer, PA 17887
U. S. A.
[로버트 김 사건의 전개 과정]
로버트 김은 아무런 대가없이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북한 관련 정보와 군수물자 관련 정보를 우방국으로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수준의 정보로 간주하고 이를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을 통해 조국에 제공했다. 그 대가로 미 형무소에서 9년형의 옥고 중 현재 7년째 옥고를 치르고 있는 그에 대해 한국정부와 대다수 한국민들은 직간접적으로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로버트 김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로버트 김 석방위원회’를 구성해 국내와 미국 교민들을 상대로 대미 정부 석방 촉진과 가족 돕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바 있으나 기대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한국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에 정보 수혜자인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을 서둘러 철수시켜 버리고 이를 로버트 김 개인이 책임지게끔 발을 뺏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로버트 김 혼자 모든 멍에를 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무책임한 자세, 대다수 한국민들의 소극적 자세와 무관심 등으로 인해 로버트 김 석방운동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옥에서 쓸쓸히 환갑을 넘긴 로버트 김은 고도절해에 갇힌 빠삐옹 같이 줄기차게 스스로의 권익을 찾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고국에도 도움을 요청해 왔다.
2001년 9월 로버트 김은 변호사의 도움 없이 혼자 항고자료를 준비해 감형을 호소했으나 마지막 항고(抗告)마저 미 연방정부 법원에 의해 기각되고 말았다. 이제는 미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에 의한 감형 및 조기석방을 기대해 볼 수밖에 없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 정부가 개입을 꺼리는 미묘한 정치ㆍ외교현안]
로버트 김 사건은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발생한 미묘한 한미간 국방 및 외교적 사건이나 이러한 정보제공이 정권 유지 차원의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도 고민하면서 풀어야 할 국가 현안 과제이었다. 그러나 소위 국민의 정부로 스스로를 칭한 현 정부는 아무런 해결책도 강구하지 못한 채 또다시 노무현 정부에게 공을 넘기게 되었다.
정부는 초지일관되게 로버트 김이 미국인이고 이 사건은 미국법에 의해 처리된 결과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피해 당사자인 로버트 김은 비록 미국적(美國籍)을 취득한 미국인 신분이나, 모국인 대한민국이 “군수 물자 관련 취급자들이 공명심에 들떠 막대한 국가 예산을 단순 정보에 의해 집행”하는 등 북한의 군사 및 국제적인 군수 관련 정보부족으로 우리 나라 국방이 제대로 방향을 못 잡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겨 정보를 제공했다고 자신의 정보 제공 동기를 밝히고 있다. 정작 대한민국 정부는 그로부터 정보수혜를 받고 그가 위기에 처하자 미국국민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김은 96년 한국에서 국방 관련 고위급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내 주요 국방관련 기관을 방문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미 해군성 문관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관련 고위인사들의 통역안내를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장교들과 교류를 갖게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젊은 정보장교의 애국심의 공백을 메워 주려는 충정’의 발로로 미 해군성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관련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게 된 것이다.
[로버트 김을 알게 된 사연]
로버트 김에 대한 방관자적 자세를 버리고 더 이상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을 하게 된 것은 2001년 4월경 우연한 기회에 절친한 대학동기가 로버트 김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매일경제 배병휴 논설위원을 한 행사장에서 만났는데 그때 배위원은 ‘경제풍월’이라는 잡지의 발행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평소 얼굴을 익힌 사이라 명함을 주고받고 헤어졌는데 며칠 후 그가 보내온 ‘경제풍월’지를 펼쳐보니 뜻밖에도 그 속에 내 대학친구인 하금성 사장이 로버트 김을 돕고 있다는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ROTC동기생으로 10여년전부터 독일로부터 수입한 흑맥주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는데 성격이 화통하고 정부나 공공단체가 신경 써 관리해야 할 불편사항을 청와대, 지방자치단체, 정부부처, 심지어는 외국 대사관에까지 가릴 데 없이 편지나 팩스등으로 신고, 시정조치를 건의하는 행동파 열혈남아로 동기들간에 알려져 있다.
하사장에게 로버트 김의 주소를 알 겸 그에게 보내온 로버트 김의 서신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더니 그는 즉시 팩스로 보내주었다. 다음은 로버트 김이 하사장에게 보낸 답신이다.

감사하신 하금성 사장님께
보내주신 3월27일자 편지를 진작 받고도 회신이 이렇게 늦어져 죄송합니다.
그 동안 저는 변호사 없이 상고심(上告審)을 준비하느라고 좀 바쁜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준비한다 해도 돈은 돈대로 들기 때문에 내가 법전을 보아 가면서 우선 지방법원 판사와 검사가 해석한 법이 이 사건에 맞지 않게 해석되었다는 것을 알리려고 재심할 수 있는 허가를 해 달라는 신청서 제출이었습니다. 이 청구 신청도 법적 이유를 들어야 하므로 미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이 신청이 허가되면 제가 반박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서광이 있다는 의미가 되며 그 이유를 합법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노력으로 상고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법을 해석하는데 판사와 검사는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끔 해석하기 때문에 나도 피고인으로서 내 쪽에 유리한 점을 법에서 찾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허가신청이 기각이 되면 앞으로는 법적으로 싸울 길도 막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잘 되기를 함께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사장님의 저를 향한 정성에 매우 고무되어 있습니다. 하사장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는 결코 외롭지 않은 투쟁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에도 많은 수고를 해 주셔서 ‘경제풍월’에 긍정적인 기사를 실을 수 있게 해 주신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훌륭한 친지들이 미국의 친구들에게 로버트 김의 선처를 호소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난 번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기해서 저는 사면 신청을 제출했습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사면해 달라고 미국정부에 말씀만 해 주시면 미국정부에서도 그 사면의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준비해서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일정과 사정에 의해서 제 문제를 거론되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한국에서는 로버트 김이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거론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내 사건과 비슷한 사건으로 연루되어 있는 미국시민이 이스라엘을 돕다가 철창생활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스라엘 수상과 국민들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끊임없이 미국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와 한국 정부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왜 동포적인 견해로 보는 것이 다를까요. 이스라엘에서는 Pollard가 미국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이스라엘 동포라고 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미국시민권자라고 해서 무관심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은 스스로 이스라엘보다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까닭일까요.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기해서 김대통령이 부시대통령에게 쓰는 편지와 사면심사위원회에 내는 편지까지 기안해서 준비해 드렸습니다. 시간이나 기회가 안 되면 그 편지에 사인을 해서 전하기만 하면 될 수 있도록 해 드렸는데 그것을 못했습니다.
방미 시 물론 다른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요. 나의 경우는 미국 방위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정부 대표가 말 한 마디만 해도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미국이 대한민국을 진실로 우방국이라고 생각하고 한반도에 관한 정보만이라도 서로 공유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사건은 민주와 공산의 이념 차이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 민주주의가 이루어졌고 한반도가 통일이 되었다면 내가 이곳에 들어와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내가 내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저지른 일도 아니고 미국이 방위에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에서 협조한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나를 한국에서 보낸 첩자로 인정하면서 종신징역으로 기소했던 것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부인만 했어도 결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죄지은 범법자처럼 관계자를 소환해 버리고 미국 사법부에 말 한 마디 안하고 있었으니 모든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죄를 혼자 질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습니다. 공모자 없는 공모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는 나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미국에 귀화했으면 미국을 위해서 살아야지 미국을 배반하면서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미국사법부에 대해서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까지 하면서 신문에 냈습니다. 내가 미국을 배반한 것이 아니고 한미간에 부족한 점을 메꾸기 위해서였는데 그 사람도 검사가 하는 말만 듣고 저를 질책했습니다.
그 분이 보는 조국관도 그 분한테는 일리(一理)가 있겠지만 나는 퇴직을 앞두고 조국인 한국을 위해서도 내가 배운 것을 가지고 이바지할 계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 사정을 알려고 하다 보니 한국에 유익할 만한 것을 보내게 된 것이지 내가 한국을 남의 나라라고 생각했으면 왜 내가 관심을 가졌겠습니까.
저는 미국 정부 일만 25년 이상했으며 그 중 24년을 정보계통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년을 해군 정보국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국방기밀에 해당되는 것인지도 알만 합니다. 지면을 통해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 줄이겠습니다. 하여튼 저는 부당하게 언도된 셈이지요.
이곳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도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조국을 위한다는 열정도 식어지고 있으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 국민들을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출감해서 가족과 함께 남은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내 일생의 행복해야 할 시간은 철조망 안에서 다 보내고 있습니다.
나와 내 처의 환갑날, 아들딸들의 결혼식, 자식들의 대학졸업식, 자식들의 대학졸업식, 학위 수여식, 손자들의 출생과 돌날 등 이 모든 인생의 기쁨이 되는 순간들의 잔칫날을 이곳에서 주는 감옥 식사로 잔치상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이것도 나만의 불행이 아니고 온 가족의 불행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 집안 3대가 맞이하는 비운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으로 졸도하신 저의 부친께서 이제 치매현상을 갖게 되어 그의 거동이나 생활을 전부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당신을 내가 장자로서 그의 생전에 뵈올 수 있고 또 그의 임종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현재 지상(至上)의 바람입니다.
하사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사장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우리 조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면 우리 조국도 일등국가가 되고 일등국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에서도 교과서를 자기 마음대로 수정 출판할 수 없을 것이며 미국도 한국에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서 SOFA 문제도 평등하게 조인될 것입니다.
철조망 안에서 보는 저의 눈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왕권정치(王權政治)인지 인재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통령이 정책수립에서부터 집행까지 관할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조국의 번영을 위해서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진 일꾼들이 많이 있었으면 합니다. 정치인들도 입안을 할 때 오류인지 알면서도 당략에 따라 동조해야 하는 오류를 타의에 의해 범하고 있으니 우리 나라의 정치는 발전이 없고 결국 당파싸움의 연결로 초지일관하는 것 같습니다.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신다면 그들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데도 앞을 못 보고 시간과 세금을 낭비하고 있으니 열이 납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겸손한 국가 지도자들이 많이 나서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한낱 나의 노파심일까요.
끝으로 하사장님께서 애써 주시고 또 염려와 격려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귀 가정과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은총 내리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1년 4월 12일
Robert C. Kim 김채곤 드림
로버트 김이 감옥에서 쓴 이 글을 읽고 나는 심한 자책감과 함께 북받치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누가 국가를 위해 조건 없는 헌신을 하다가 고난을 당한 그를 이렇게 되도록까지 내 버려 두었나? 한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즉시 그를 위해 미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을 통한 석방운동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관계부처와 국회, 정당 대표자, 주한 미대사관 관계자에게 로버트 김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띄우는 일부터 착수했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와 외무부에서 회신이 왔으나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미국민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었다.
2001년 8월 동아일보 여론마당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그의 정치적 사면을 요구할 것을 주장했으나 9.11테러로 부시 대통령 방한이 취소됨으로써 무산되었다. 지역 로타리클럽으로부터의 초청 특강에 응하기도 하고 일부 잡지 인터뷰를 통해 로버트 김의 조기 석방을 외쳤으나 가시적인 실효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로버트 김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격려와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현 시점에서 로버트 김 사건 재조명 필요성]
한국은 남북 분단의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6.25전쟁을 치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미국의 도움을 받은 이후 미국과 정치 및 경제 관계를 긴밀히 하며 혈맹적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미 양국은 올해로 한미동맹 50주년이라 는 중요한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1998년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격장 논란, 독극물 방류 사건, 용산 기지 아파트 건설 문제, 2002년 6월 주한 미군의 군사훈련 중 의정부시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으로 인한 지난 해말 한 달 여에 걸친 대규모 촛불시위와 SOFA 협정 개정 요구 등 한미간에 불평등한 인권에 대한 논란이 독립국가로서의 주권 회복 차원에서 여론화되는 상황에 있다. 또한 미국 부시 신정부가 추진하려는 MD 정책을 비판하는 일부 반대 여론이 제기되는 등 우리 나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하버드대 사무엘 헌팅톤 교수가 저술한 ‘문명의 충돌’에서는 동서 냉전에서 남북문제(빈부 격차해소)로, 소련의 붕괴로 인한 민족국가 중심의 새로운 질서 개편, 문명발생지를 근거로 한, 같은 문명권에서도 다민족국가일 경우 종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갈등 및 대립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현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이를 새로운 개체별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한 움직임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로버트 김 사건 역시 우리 나라가 이와 같은 개별적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발생한 성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타 이러한 성격의 사건은 국가적 뒷받침을 받고 있는데 반해(유사한 이스라엘, 중국의 사례 경우) 로버트 김의 경우는 모국으로부터 국가적 보호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조국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국민들로부터 진정한 애국심이나 자기 헌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국가도 국민에게 그러한 애국심을 요구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한미간이 혈맹으로까지 표현하는 전통적 우방국임에도 불구하고 적대국간에나 있을 수 있는 간첩죄의 가혹한 법 적용을 받아 9년이라는 중형이 내려졌으며, 로버트 김의 불만은 모국을 위해 헌신한 자신에 대해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이와 같은 가혹한 형벌이 내려지도록 자신을 저버린 모국의 관계자 및 국정 책임자들에게로 향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정치적 사면으로 한미간 정체성 확인, 우호관계 재정립해야 ]
2001년 10월 로버트 김은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정치적 사면 호소문 사본을 청와대에 보내면서 본인에게도 보내왔다.
10월로 예정되었던 부시대통령의 방한 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날 때 자신의 정치적 사면을 배려해 달라며 저간의 사정을 상세히 기술한 이 편지 내용이 서울에서 논의될 절호의 기회는 뜻밖의 9월 11일 WTC테러로 인해 무기 연기되고 말았다.
로버트 김 개인의 이러한 처절한 노력마저 문명의 충돌 성격을 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간의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 전개로 또다시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나 최근 광화문과 시청 앞에서 연이어 열리고 있는 여중생 미선, 효순 양 추모집회와 SOFA 개정 요구로 새로운 한미관계의 설정이 논의되는 분위기에서 모국을 도우려다 너무나 큰 자기희생의 댓가를 치루고 있는 로버트 김의 애국적 행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미선, 효순 양의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며 SOFA 개정과 주권 회복운동을 전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현 시점에서 7년째 미국 펜실바니아주 알렌우드 감옥에서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로버트 김을 우리 국민이 다시 한 번 재인식하고 로버트 김 석방운동을 재추진하여 하루 속히 그를 조국의 품에 안음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끝 -----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