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비교표군요

관리자
발행일 2004-04-14 조회수 13

1. 출생 :
* 김충조 : 1942년 여수시 국동에서 빈농의 셋째 아들로 출생.
* 김성곤: 1952년 부산에서 고위공직자(한국은행 부총재, 8․9대 의원 역임) 의 셋째 아들로 출생
2. 성장 및 생활 :
* 김충조 : 여수에서 태어나서 대학 4년을 제외하고는 여수를 떠난 적이 없으며, 60평생을 여수를 지
켜 왔음.
* 김성곤 : 부산에서 태어나서 여수에서는 적이 없으며, 평생을 서울에서 성장하고 생활하다가, 미
국으로 이주하기 직전에 둔덕동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기 위해 1년 남짓 여수에서 머문
적이 있음.
3. 초등학교 :
* 김충조 : 여수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들이 다니던 학년 당 2학급에 불과한 남초등학교조차도, 중도
에 중퇴 위기를 넘기고 겨우 졸업함.
* 김성곤 : 서울에서도 가장 부자들이 다니는 모 초등학교를 유복한 환경에서 졸업함.
4. 중.고등학교 :
* 김충조 : 아버님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금양호(여수-부산간 정기여객선) 취사보조원으로 취
업을 강요했으나 그를 설득하여, 혼자 힘으로 여수서중, 여수고등학교를 입주 과외를하
면서도 전학년 장학금 혜택을 받고 졸업.(고교 수업료 면제는 받았으나, 입학금을 내지
못해 여수고등학교를 제적을 당하고, 여수수산고등학교 1학년 2학기를 수료하고 2학년
때 여수고등학교에 재입학을 허용 받은, 뼈저린 가난을 경험함).
* 김성곤 : 한국은행 본점에서 부총재 등 고위공직자로 근무하는 부친 덕택에, 당시 고위 공직자나
재벌 자제들이 그렇듯, 힘 안들이고 경기중,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유복한 환경에서 졸업
함.

5. 대학교 :
* 김충조 : 여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도 전
학년 장학생에, 유진오 총장 특대생으로 졸업함.(초기 학생운동세력인 6.3세대에 해당함)
* 김성곤 :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 재수를 하여 겨우 입학해서
졸업했음. 1975년 4월 당시 사학과 대표(학회장)로 있었지만, 최근 그의 각종 홍보물에는
그가 마치 고려대학교 학생회장을 지낸 것으로 경력을 거짓으로 기록하고 있음.
6. 80년 5.18 광주 민중항쟁 당시 :
* 김충조 : 여순산업신보사 사장으로 헌혈운동과 성금 모금운동으로 5.18민중항쟁에 정신적으로 적
극 동참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 신문을 강제 폐간 당함.
* 김성곤 : 79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5.18 광주 민중항쟁을 멀리서 구경하고 있었음.
7. 87년 6월 항쟁 당시 :
* 김충조 : 86년부터 민주회복투쟁에 투신, 민주쟁취 국민운동 전남본부 공동의장으로 활동하였고,
87년 9.29선언 직전인 6월 23일에는 여수권의 민주회복과 대통령 직선제 투쟁을 주도하
여, 여수 개항 이래 최초,최대인 3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6.23 민중항쟁의 깃발을 높이 올
린 봉화수였음.
* 김성곤 : 계속 미국에서 거주하였기에, 역시 먼 곳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음.
8. 1990년대 이후 :
* 김충조 : 1987년 13대 대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고, 88년 13
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입하여, 14,15,16대에 걸친 4선의원의 경력을 쌓음.
그동안, 민주당 사무총장 겸 15대 대선 선거대책본부장, 국회윤리위원장,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장, 국회 고건 국무총리 인사청문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함.
* 김성곤 : 1990년에 뒤늦게 미국에서 귀국하여 대학강사, 영산대학 교수 등으로 활동하다가, 신순
범 의원이 씨프린스호 사건으로 15대 총선에 입후보를 포기하자, 김상현의 주선으로 낙
하산 공천을 받고 입후보 마감 직전에야 당시의 여수시 갑구(현재, 을구)에 내려와서,
당시의 주승용의 조직과 부친 김상영의 후광 덕분으로 15대 의원이 됨.
9. 16대 총선과 17대 총선 :
* 김충조 :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심사를 통해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7대 총선
에서는 여수시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해 공천을 받음.
* 김성곤 : 16대 총선에는 처음부터 공천신청조차 하지 않았으며, 17대 총선에는 무수속 김재출 후
보와의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약속을 파기하고, 중앙당에서 밀실 공천을 받음으로써 결과
적으로 두 번 모두 낙하산 공천을 받은 격이 되었음.
따라서, 그가 지금 각종 홍보물에서 김충조 후보에게 16대 때 양보했다고 기록하고, 똑
같은 발언을 하고 다니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죄에 해당됨.
특히, 15대 당시에는 부친 김상영을 팔고 다니더니, 17대에는 그의 형님 로버트 김(김채
곤)을 팔고 다니고 있으며, 15대.17대 모두 낙하산을 타고 왔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지금
까지 단 한번도 스스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회의원 후보가 되지 못한 특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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