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세계무역센터 유치 열풍

관리자
발행일 2007-05-25 조회수 24

[조선데스크]
                           • 빗나간 세계무역센터 유치 열풍
                                                                                발행일 : 2007.05.21  기고자 : 차학봉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를 유치,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세계무역센터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강원도가 지난해 춘천에 세계 무역센터 건립을 위해 한 업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전남 여수, 충북 오송 등도 세계 무역센터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은 다국적기업 유치를 명분으로 송도신도시에 151층 초고층 건물을 추진하고 있다. 한 자치단체장은 “세계 무역센터를 지어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상징건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고층 건물을 지어 세계무역센터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세계적인 기업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시(大阪市)의 ‘월드 트레이드센터’다. 한국의 자치단체장들 사이에서는 세계무역센터 건립의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오사카시는 1990년 아시아 무역 중심도시로의 도약을 선언하고 33층 규모의 월드트레이드 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시장은 인근 지역을 의식, 한술 더 떠 “이왕 만들 바에는 서(西) 일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자”며 55층으로 건물 층수를 높였다.
오사카 세계무역센터는 95년 완공 됐지만 무역 관련 다국적 기업은 고사하고 일본 기업도 제대로 입주하지 않았다. 결국 70% 이상의 사무실을 시청 관련 기관이 차지, 오사카시의 제 2청사라는 놀림을 당하고 있다. 당시 오사카시가 월드트레이드 센터와 함께 건설한 ‘아시아태평양 트레이드센터(ATC)’도 무역 업체 대신 유통업체·복지관련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있고 운영적자가 누적돼 사실상 파산 상태이다. 관청 주도로 사업을 하다 보니 기업이 원하는 입지가 아니었고 필요 이상으로 초고층·대규모로 짓다 보니 채산성을 맞추기가 애초부터 어려웠다. 이런 식의 ‘단체장 폼 잡기 초대형 프로젝트’가 누적된 오사카시는 부채가 우리 돈으로 50조원이 넘어 ‘파산(破産) 예상 지방자치단체 리스트’ 첫 순위에 오르고 있다.
국내의 제조업체들이 임금이 싸고 공장 부지를 거의 공짜로 주는 베트남·중국 등으로 빠져 나가면서 지방 대도시들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자치단체장들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기업유치나 관광객 유치는 초고층 건물·초대형 리조트와 같은 ‘한건주의 사업’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미국의 헬리버튼사 등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를 중동 두바이로 옮기는 것은 세계 최고층 빌딩이 있어서가 아니다. 법인세·소득세·무역장벽·환율통제 철폐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의 대담한 개혁정책의 결과이다.
중국 상하이 푸둥에 다국적 기업들이 몰리는 것도 고층 빌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념보다는 실리를 우선한 개혁·개방정책 덕분에 급성장하고 있는 초거대 시장이 배경이다.
지금 우리 자치단체장들은 중동 두바이와 중국 상하이 푸둥을 배우자고 외치면서 정작 건물만 흉내 내려 하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은 한건주의 식의 초대형(超大型) 프로젝트에 집착하기보다는 진정 기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차학봉 부동산팀장(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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