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사는 길 잡지 - 회원 소개 코너(여수환경연합 박근호 회원)

관리자
발행일 2009-08-20 조회수 9

여수 바다 속으로 들어간 사나이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끝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를 보고 있노라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다. 이 기분 느껴보지 않은 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의 속은 어떨까. 삼면이 바다라고 하지만 바다의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여수환경연합 박근호(42세) 회원은 바다의 속사정을 알리고 바다를 살리려는 몇 안 되는 바다 속 환경운동가 중 한 명이다.  
철두철미, 깐깐의 대명사 박 회원
잔잔한 바다 위로 작은 어선들이 들고 나는 여수 국동항.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나서자 마흔 살 넘은 아저씨는 간데없고 군더더기 없고 탄력 있는 사나이로 변해 있었다. 교대근무로 지난 밤 12시에 퇴근하고 이른 아침 나온 길이라 피곤할 만도 한데 망설임 없이 20킬로그램이 넘는 수중장비를 챙겨 입고는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간간히 바다 위로 올라오는 기포만이 그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금방 안 나올 거예요. 산소통이 바닥나야 나올까. 한 번 들어가면 끝장을 봐야 되는 성격이라.”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을 해온 여수환경연합 문갑태 국장의 말이다.
여수에 환경운동연합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직접 사무실을 찾아와 회원 가입을 했다는 그는 초기부터 여수환경연합이 바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를 바랐다. 그러더니 직접 스쿠버 다이버들을 모아 소모임 ‘소라의 꿈’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바다 속 환경 운동을 하고 있다.
회원이지만 의욕과 활동력은 활동가 못지않다.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철두철미하고 깐깐하기로 자자하다. 한 번 참여하기로 한 일은 2~3개월 전부터 사전조사는 기본이고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야 직성이 풀린다. “몇 년 전에 근호 형님하고 여수 낚시터 주변 바다의 납 오염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솔직히 낚시 추에 달린 조그만 납을 망망대해에서 어찌 조사를 해야 할까 막막했죠. 그런데 어느 날인가 몇 날 며칠을 바다 속에 들어가 납만 주워 온 거에요. 망망대해에서 그것도 낚시추로 사용하는 그 작은 납추들을 어찌 주웠을까 싶은 게 존경스러웠죠.” 그 일로 실태 조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의 성격, 가히 짐작이 된다.
20분이 지나고 다시 바다로 올라온 그. 그런데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말도 못하게 지저분하네. 쓰레기가 엄청 나.”하며 수중카메라로 찍어온 사진들을 내밀었다. 수북이 쌓인 키조개껍질, 호스, 로프 등 폐어구에 폐타이어, 각종 생활폐기물들이 바다 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나마 전부는 아니지만 며칠 후 진행될 수중정화 캠페인에서 일부는 치워질 것이다.  
바다 속에서 펼치는 환경운동
그의 인생에서 바다는 빼놓을 수 없는 대상이다. 여수 남단의 작은 섬 월호도. 섬과 섬,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가장 큰 호기심의 대상은 바다였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다가도 바다 속 세상이 궁금했어요.” 15년 전부터 독학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다. 장비 하나하나를 마련하고 동호회 활동을 통해 스쿠버 다이빙을 익혀나갔다. 죽을 뻔한 적도 여러 차례. “바다 속에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데, 한 번은 굴에 들어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맸어요.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데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더라고요. 그 때의 공포를 잊을 수 없죠.”
혹독한 과정을 겪고 들어간 바다,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양한 산호초와 말미잘, 해산물, 물고기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워요. 하지만 이런 부분이 많지 않아요. 각종 쓰레기들이 대부분이에요. 늘 보고 자란 곳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엄청 지저분하더라고요.” 그냥 취미로 즐길 생각이었다면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는 바다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은 그를 바다 속 환경운동가로 이끌었다. 스쿠버 다이버 동호회 회원들과 수중정화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바다 속 환경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 카페에 올려 누구든지 쉽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 ‘바다로의 희망 찾기’에는 그가 올린 바다 속 사진과 동영상이 5천 장이 넘는다. “아름다운 풍경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바다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잖아요. 그렇다고 바다 속을 보러 다 들어갈 수는 없고. 다행히 제가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으니 대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거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바다의 속사정을 좀 알고 경각심을 갖고 바다를 함께 지켜냈으면 좋겠어요.”
여수 바다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그는 바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해수 소통을 꼽는다. “3년 전에 유럽 국가들의 바다를 보고 간 적이 있어요. 개발이 아니라 바다를 있는 그대로 이용하더라고요. 특히 큰 방파제가 없고 대신 큰 바윗돌로 큰 파도를 막을 수 있게 해서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한 점이 참 신기했어요.”라며 부러워했다. 이어 “여수 환경도 못지않은 데 무조건 큰 방파제로 막고 보자는 식이에요. 겉으론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방파제 안쪽은 생물다양성도 떨어지고 (생물들의) 활동성이 많이 떨어져요. 그에 비해 바깥쪽은 생물종도 많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여수가 세계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내세우고 있는데 해수유통이 해결되지 않고는 죽어있는 바다, 숨죽은 연안밖에 되질 않아요. 그런데도 예산타령만 하고 있으니 참 아쉽죠.”
이 남자가 사는 법
뭍에서도 그는 정신없이 바쁘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환경연합 활동 외에도 적십자, 해양구조단, 아마추어 무선 햄, 꽃을 사랑하는 가족봉사단 등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는 단체가 4개가 넘는다. 5월에만도 어르신들 위안잔치와 낙도 봉사활동, 꽃을 사랑하는 가족모임 활동, 수중정화활동 등등 일들로 꽉 찼다.
그의 성격상 어느 하나 대충 하는 법도 없다. 적십자 봉사활동 시간은 2006년에 1000시간을 돌파, 현재 2000시간이 넘었고 꽃을 사랑하는 가족봉사단에서는 올해 회장까지 맡게 됐다. “피곤하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일이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봉사라는 게 남을 도와준다는 것보다 내가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서 위안을 받아요.”
자원 활동에 열성인 그를 보고 돈 많은 백수 혹은 바다 일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지만 그는 어엿한 19년차 모범 근로자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늘 미안하죠.” 하지만 가족의 든든한 지지가 없었다면 그의 왕성한 활동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많은 일들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내 몸이 건강해야만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어요. 몸이 좀 좋지 않을 땐 스스로 조절하는 게 필요하죠.” 또 하나는 각 단체의 활동을 적절히 연계해 함께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마추어 무선 햄 동호회 회원들과 적십자에서 떠나는 낙도 봉사활동, 해양구조단과 환경연합이 함께 하는 수중정화활동, 두 아이와 함께 하는 꽃 가꾸기 봉사, 가족여행으로 떠나는 환경연합 회원대회 식이다. 개별 단체의 활동일 때보다 시너지효과도 크고 가족들과도 함께 보낼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일거다득인 셈이다.  
시대의 주인공
숱한 활동들을 마치고 오후 4시 출근길을 나선다. “인생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내 모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원 활동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요. 물론 나이 들면 체력이 떨어지겠지만 그 때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해나갈 것에요.”라는 그. 바다 속 환경운동가로서의 포부도 밝힌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비록 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한 번 추진했던 일은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그는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자 이 시대를 즐길 줄 아는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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