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률 98% 핵발전소 중단 타이완 시민들의 힘

관리자
발행일 2015-06-03 조회수 15



(위) 가운데 남성이 타이완 녹색공민행동연맹 홍션한 부비서장. 사람들이 든 반핵 깃발에 “후쿠시마가 또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아래) “나는 사람이다. 나는 탈핵을 원한다.”는 퍼포먼스 모습. 타이완 시민들의 힘은 국민당 정부와 타이완전력에 영향을 행사할 만큼 성장하였다. 대만에서 불고 있는 탈핵 바람이 한국에도 꼭 필요하다.
[ 공정률 98% 핵발전소를 중단시킨 타이완 시민들의 힘 ]
“나는 사람이다. 나는 반핵을 원한다” 글 이유진
신뢰할 수도 없고 참여하기도 싫던 핵발전소 문제
공정률 98%면 거의 다 지은 셈이다. 2014년 타이완 정부는 완공을 앞둔 제4핵발전소에 대해 건설 중단 결정을 내렸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며 반핵시위를 벌이고, 민진당 정치인이 단식투쟁을 하면서 얻어 낸 성과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농성에 타이완에서는 이례적으로 시위 진압용 살수차까지 등장했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들이 이토록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반핵시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타이완에는 모두 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타이베이 북부 진샨과 궈셩, 남부 마안산 3곳에 각각 2기씩 운영 중이다. 그리고 2000년부터 제4핵발전소 2기를 북부 궁랴오에 짓고 있다. 공사를 시작한 지 15년이나 지났다. 핵발전소 설계는 미국 GE사, 원자로 제조는 일본 히타치와 도시바, 발전기 설치는 미쓰비시가 한다. 건설에 많은 회사가 참여하고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통합 운영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공사비는 56억 달러(6조 1천600억 원)에서 90억 달러(9조 9천억 원)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제4핵발전소 논쟁이 계속되다 보니 시민들은 핵발전소 문제에 피로감을 느꼈다. 핵발전소 관련 토론은 신뢰할 수도 없고, 참여하기도 싫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달라졌다. 타이완은 일본과 같이 환태평양 활화산 지진대에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제4핵발전소가 수도 타이베이에 가까워 안전 문제가 부각되었다. 게다가 남쪽 란위다오 섬에 임시 저장하던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가 되고, 핵발전소 수명 만료 시점도 다가왔다. 핵발전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반핵운동, 지역과 시민들 속으로
타이완의 반핵운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핵발전소 반대를 표방한 민진당과 적극 협력하면서 성장했다. 1994년 국민당 정부는 제4핵발전소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을 추진했다. 이에 반대한 당시 민진당 린이슝 대표는 “제4핵발전소 존폐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투표법이 없어 실현되지는 못했다. 2000년 타이완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룬 민진당은 제4핵발전소 폐쇄를 선언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정치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4개월 만에 공사 재개를 발표하고 말았다. 2001년 제4핵발전소 국민투표 운동이 다시 시작되어 국민투표법이 제정되었지만 투표율이 50%가 넘어야 한다는 엄격한 법 적용으로 또 한 번 좌절을 겪었다.
민진당에 의존했던 반핵운동은 타격을 입었고, 다시 지역과 시민들 속으로 들어갔다. 2005년 녹색공민행동은 반핵 다큐멘터리 순회 상영을 시작했고, 2009년과 2010년 궁랴오 지역에서 노 누크(NO NUKE) 콘서트, 탈핵영화제, 향토농민장터 등을 열었다. 이러한 꾸준한 활동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힘을 모을 수 있었다.
시민들의 직접행동으로 건설 중단
2013년 3월 후쿠시마 사고 3주기 반핵집회에 무려 20만 명이 참여했다(타이완 총인구는 약 2천3백만 명). 타이완에는 반핵운동단체가 130여 개가 넘고, 회원도 22만 명이나 된다. 참여하는 사람들과 단체도 란위다오 섬의 원주민부터 환경단체, 교수협회, 엄마들의 모임, 노동조합 등 다양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녹색공민행동은 ‘제로핵발전소 다시보기’ 순회강연과 탈핵 씨앗강사 100명 양성에 집중했다. 탈핵 강사를 양성해서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핵 문제를 알리기 시작했고, 반핵을 표방한 깃발을 만들어 전국에 배달했다.
전국 곳곳의 상점, 학교, 가정에서 10만 개가 넘는 반핵 깃발을 달았다. 양팔을 모아 ‘사람 인(人)’자를 표시하는 탈핵 퍼포먼스도 만들어 냈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탈핵을 원한다.”는 메시지이다. 가수들이 탈핵 음반을 만들고, 탈핵 체조도 만들었다. 유명감독, 배우들도 탈핵을 표시하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등 탈핵 활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2014년 초 타이완전력과 경제부는 제4핵발전소 안전검사를 서두르면서 핵연료봉 투입을 추진했다. 이에 탈핵운동도 3월 시위 준비에 들어갔다. 린이슝 민진당 전 대표가 제4핵발전소 중단을 촉구하며 1994년에 이어 다시 단식을 시작했다. 반핵단체들이 집결해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열고,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벌였다. 4월 27일에는 타이베이 시 충효서로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새벽까지 도로를 점거하고 제4핵발전소 건설 중단, 기존 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주민투표법 개정을 외쳤다.
마침내 4월 28일 아침, 타이완 정부는 제4핵발전소 1호기와 2호기 공사 중단과 봉인을 선언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확산된 탈핵을 위한 시민행동이 얻어 낸 성과이다. 시민들의 힘은 국민당 정부와 타이완전력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성장하였다.
한국의 탈핵운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미 한국도 핵발전소를 더 이상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60%를 넘어서고 있지만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2035년까지 핵발전소를 15기 가까이 추가로 짓겠다고 밝혔다. 대만에서 불고 있는 탈핵 바람이 한국에도 꼭 필요하다.
“우리는 핵발전소를 멈춰도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홍션한 부비서장은 “2016년 이전에 제4핵발전소 공사 재개와 가동은 불가능하다. 봉인을 풀고 공사를 다시 추진하면 국민당이 정치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제4핵발전소의 완전 폐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핵발전소 추진파들은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 재가동 여론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타이완에서 핵발전소는 전체 전력의 18.4%를 담당한다. 게다가 진샨 제1핵발전소는 2018년, 궈셩 제2핵발전소는 2022년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전력 수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에 그는 한국을 방문해 서울시의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에 대해 세밀하게 조사하고 돌아갔다. 타이완이 탈핵을 하려면 전력 수요관리 정책이 꼭 필요한데, 서울시에서 지난 2년 연속으로 전력 소비를 줄인 점이 성공사례로 보였던 것이다.
홍션한 부비서장은 또한 탈핵을 위해서는 녹색정치가 중요하고, 성장제일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발전소를 멈추면 전기요금이 올라가고, 국내총생산이나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공식이다. 우리는 핵발전소를 멈춰도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 사회를 탈핵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력 소비가 늘어나야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낡은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월성1호기, 고리1호기와 같이 낡은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막고 신규 핵발전소를 덜 지으려면 지금 당장 탈핵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이 모여야 한다. 타이완 시민들이 보여준 것처럼, 시민들의 직접행동만이 우리 사회의 탈핵을 앞당길 수 있다.
↘ 이유진 님은 현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에서 에너지 기후변화 관련 활동을 했으며,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정책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저서로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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