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공원에서 생긴 일

관리자
발행일 2004-05-15 조회수 15

난감했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들은 공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시립국악 관현악단 정기 연주회였다.
여수 같은 소도시에선 자주 접할 수 없는 공연이고 더구나 우리 마을 아이들 중엔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버이날을 맞아 마을 아이들과 함께 사물놀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도 나도 즐거웠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4시가 되면 마을 회관에서는 아이들의 연습소리가 잔치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드디어 잔치 날, 아이들의 작은 공연이 마당에 펼쳐졌고 연이어 앵 콜 공연까지 성공리에 마치고, 장고 며 북 여기저기에 끼워주신 어르신들의 정성을 모아 우리들은 뒤풀이를 약속했다. 그렇게 연주회에 가게 되었다. 야외 공연이고, 국악이고, 시민을 위한 무료 공연이기에...
고등학교 아이들 하교 시간과 겹친 33번 시내버스는 만원이었다. 그것까지도 학창시절 통학버스를 떠올리며 아이들과 설레었다.
우리들은 연주 모습을 잘 지켜 볼 수 있는 맨 앞줄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7시 공연이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과 나는 5시부터 교대로 김밥이며 떡볶이를 먹으며 공연 리허설까지 지켜보았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오니 행사 관계자인 듯한 분이 오셔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단다. 난 단호히 거절했다 .오실지도 안 오실지도 모르는 높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 자리를 내 줄 순 없다고.  그리고 그런 분들은 오시는 대로 빈자리에 앉으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가 그 자리에 오게 된 것과 자리 잡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 분의 비교적 정중한 태도에 그 분이 오시면 ,정 그러시다면 두 자리 정도는 내어 드릴 수 있겠다고.  그랬는데, 얼마 후, 대여섯 분 의 높으신 분들과 사모님은 너무나 당연히 자리를 요구했다. 지체 높으신 분들께서 직접은 물론 아니고,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알아서 하는 어떤 이들의 손을 빌어서.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고 하니 그러면 맨 앞줄로 의자를 한줄 더 놓아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오간다.
설마 했다. 그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설마 했다.
나는 강하게 항의했다. 도대체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왜 이런 행태를 당연하게 생각하느냐고.  시키지도 않는 그 의자를 놓는 사람은 말은 없었지만 나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물론 그렇게 놓여진 자리에 그 큰 덩치들은 앉았다. 그런 불편한 기색을  모를 리 없건만 애써 태연한 뒷모습을 보이며.
공연이 끝날 무렵 옆자리에 앉은 그분들의 일행이 다른 일행과 얘기를 나눈다. 옆에서 어떻게나 불편하게 하는 지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었노라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누가 누구를 불편하게 하느냐고.
당신들은 도민체전에 참여하느라고 늦었고, 이미 예약된 자리란다.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 되지 않느냐고.  누구에게 예약을 했고 어떤 표시를 해 놓았든지 묻고 싶었다. 그렇게 하자면 우리도 공연 홍보물이 붙은 순간부터 예약된 자리라고.
시의원이라고 소개된 분이 뒤를 돌아보시더니 자리를 비켜 앉으신다. 그 즈음 어리석게도 나는 은근슬쩍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공연이 끝난 후 조용히 이 무식한 아줌마를 다그치기 위한 잠깐의 후퇴였던 것이다.
그  시원은 나에게 따진다.
왜 당신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뒷자리에서 시의원이면 다냐 하는 식으로 자기를 욕하느냐. 시청 직원들이 놓아 준 자리에 그저 앉았을 뿐이지 이런 것이 잘못된 줄 몰랐다. 나는 억울하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비교육적으로 떠들면 되겠느냐고.
7살짜리 아들아이에게 물었다.  어제 엄마가 어떤 아저씨와 왜 싸웠는지 아느냐고.
7살 보통 아이는 안다. “우리가 애써 맡은 자리인데 우리 허락도 없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버렸잖아요.”그런데 그 시원은 모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공연장에서 제일 좋은 관람석은 높으신 분들의 자리이고 여수시민 이외의 직함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공연 중이라고 해도 자리를 내줘야한다는 관례는 안다.
왜 시민을 위한 자리에서 우리는 그 자리를 빛내는 손님이 되지 못하고,그 어른들께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나를 공연문화도 모르는 무식한 아줌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비어있을지라도 앉지 못하는 상석문화, 관례, 이런 것들은 그 뿌리가 무엇인지. 왜 꼭 지켜져야 하는지.
이 비교육적인 아줌마는 아이들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이런 관례(?)를 보고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할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따졌다. 소시민이 진정한 시민문화의 주체가 되는 날 을 날 을 소망하며....
그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이런 억울함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한탄한다. 내가 당한 상황조차도 제대로 전달 못하는 글재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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