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없이 시민운동 없다

관리자
발행일 2003-01-30 조회수 5

명성은 사회적 자산이다/강준만  

고민할 게 그렇게 없느냐고 흉볼 분들이 있겠지만, 내겐 오래 전부터 한가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봉사와 헌신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엔 감동을 자아낼 정도로 자신의 모든 걸 바쳐 봉사하고 헌신하는 시민운동가들이 많이 있다. 특히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시민운동가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분들이 언론, 특히 조·중·동(조선·중앙·동아) 문제 만큼은 비켜가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역할 분담 또는 분업 의식 때문에 그러는 걸까? 정치개혁을 외칠 땐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까지 대거 참여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진 않다. 언론개혁은 정치개혁보다 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일까? 보통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시민운동가가 ‘언론개혁 없이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다.

믿기 어렵지만, 일단 그런 생각을 존중해주자. 내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론개혁 없이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은 매우 어렵다”는 주장이 그간 수없이 제기되어 왔고, 조·중·동과의 평화공존이나 상호 이용의 자세를 취하는 시민운동단체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어 왔지만, 이들은 오직 침묵으로만 대응한다는 점이다. 과거 그런 비판을 많이 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비판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생각해보라. 자신의 모든 걸 바쳐 봉사하고 헌신하는 시민운동가들께 그런 봉사와 헌신을 거의 하지 않은 채 편하게 책상머리만을 지키고 있는 나같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그분들을 계속 추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늘 고민만 해오던 차에 ‘시민의 신문’ 1월6일자에 실린 ‘안티조선 없이 시민운동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읽게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운동단체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집행위원장으로서 언론개혁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가 쓴 칼럼이다. 나는 이 칼럼을 가슴 아프게 읽었다. 김교수는 시민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어느 설문조사 결과에서 언론개혁운동이 무시되고 폄하되고 있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마저도 조·중·동의 홍보 효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김교수는 다음과 같이 꼬집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시민운동을 평가하기에 앞서 민언련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신문과 방송의 모니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한번 알아보라. 명성을 날리고 폼 나는 운동만 해온 활동가들은 한달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조·중·동을 껴안으려고 하는 선의의 이유를 모르진 않는다. 딱 까놓고 유력 언론의 홍보가 시민운동의 위상과 성장을 결정하는 우리 현실에서 조직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점이 있을 것이다. 또 안티조선운동과 같은 기존 언론개혁운동의 진로와 방법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성실하고 진지한 대화와 논쟁이다. 그간 한국의 유력 시민운동단체와 운동가들이 그런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자꾸 피하고 외면하기 때문에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도 자신의 명성에만 집착해 폭넓게 존경받으려는 유명 시민운동가들의 인정 욕구가 언론개혁운동의 큰 장애’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게 아닌가.

김교수도 지적했지만, 언론운동가는 도무지 명성을 얻을 수가 없다. 언론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십년간 그 운동을 해온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지금 ‘명성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민운동가의 ‘명성’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명성’도 사회적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유명 시민운동가들께서 김교수의 비판에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열띤 논쟁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강준만/전북대 언론학 교수


Comment (0)